제목 유래 - 河하~皇甫황보 작성일 2004-06-08

河 - 진주 하씨

시조는 하공진. 고려 현종 때의 항사 공시를 지냈고, 문종 때 상서공부시랑동, 평장사 등을 지냈다.

1010년 거란이 고려를 침범해 들어오자 강화 교섭사로 적진에 들어갔다가 인질로 잡혀 곤욕을 치렀다.

그 뒤 1451년 하연이 처음으로 족보를 펴내 계통을 정리하였다.

그의 8대손이 사육신의 한 사람인 하위지이다.


韓 - 청주 한씨

시조는 한란. 고려 태조가 견훤을 정벌하려고 군사를 이끌고 한란의 집 앞을 지나갈 때 칼을 차고 나가 뒤를 따라 용맹과 지혜로 공을 세우고 고려를 세우는 개국 공신이 되었다.

본래 기자의 후손이나, 기자의 41대손인 예왕이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남쪽으로 내려와 금먀현에서 마한을 세우고 스스로 한왕이라 하여 한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그의 31대손인 지원의 셋째 아들 영이 청주 지방에 살아서 청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양철공파, 문정공파, 충간공파 등 10개 파로 갈라져 42대에 이르렀다.


韓 - 곡산 한씨

시조는 한예. 중국 송 나라 때 8학사의 한 사람으로 1206년 고려 희종 때 우리 나라에 와서 문하시종평장사로 곡산부원군에 봉해져 곡산을 본관으로 하는 한씨 시조가 되었다.


咸 - 강릉 함씨

문헌에는 60본이나 되지만, 단본으로 알려져 있다.

시조는 함규. 고려 개국 공신으로 몽고가 침략할 때 대장군으로 나가 공을 세웠으며 당 나라에 들어가 벼슬을 지내던 함혁의 후손이다.

그의 후손들이 강릉으로 내려가 살았으므로 강릉이 본관이 된 것이다.


許 - 허씨

허씨는 기록상으로는 59본이나 되지만, 가야국 수로왕비 보주 황태후 허씨가 인도 지방 군주의 공주로 16세 때 큰 배에 석탑을 싣고 경남 창원 앞 바다로 들어와 수로왕이 왕비로 삼아 열 아들을 낳았다.

수로왕은 둘째 아들에게 어머니 성씨를 따르게 하여 허씨가 생겼다.


許 - 김해 허씨

시조는 허염. 김수로 왕의 둘재 아들 허황목의 35대손이다. 고려 문종 때 태어나 벼슬하고 가야군에 봉해져 시조가 되었다.


許 - 양천 허씨

시조는 허선문. 김수로 왕의 30대손이며, 고려 때 공암에 머물면서 농사 일에 힘써 많은 양곡을 창고에 쌓아 두었는데, 때마침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하자 군량미를 공급해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아주었다.

태조가 그의 공을 크게 칭찬하며 양천 땅을 다스리게 하여 양천 허씨의 시조가 되었다.


許 - 하양 허씨

시조는 허강안. 김수로 왕의 33대손이며 고려 현종 때 호부랑장을 지냈다.

그 뒤 하주에서 살았는데, 지방 이름이 하양으로 바뀌면서 본관도 하양이 되었다. 지금 50대에 이르렀다.


玄 씨

기록에는 106본이나 되지만 연주, 창원, 성주, 순천 현씨를 제외하고는 기록이 분명하지 못하다.

현씨는 모두 연주 현씨의 시조인 현담윤의 후손이라고 한다.


玄 - 성주 현씨

시조는 현구. 고려 때 대장군 현담윤의 9대손이다.

조선 세종대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고부군수를 지내고 성주에 살아 성주가 본관이 되었다.


玄 - 순천 현씨

시조는 현원고. 현담윤의 손자이며 영동정 벼슬을 지낸 뒤 순천부원군이 되어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순천을 본관으로 정하였다. 지금 39대에 이르고 있다.


玄 - 연주 현씨

시조는 현담윤. 고려 의종 때 대장군을 지내고 명종 때 조위총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문하시랑 평장사가 되어 연안군에 봉해졌다.

그의 후손들이 본관을 연주로 삼았는데, 연안 현씨라고도 한다. 지금 40대에 이르렀다.


玄 - 창원 현씨

시조는 현덕유. 현담윤의 아들로 고려 명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예부시랑, 참지정사 등 벼슬을 하고 창원군에 봉해져 창원 현씨의 시조가 되었다.


刑 - 진주 형씨

기록으로는 14본이 있으나 진주 단본으로 내려온다. 시조는 형웅. 당 나라에서 파견한 8학사의 한 사라으로 고구려에 들어와 벼슬하였다.

그 뒤 15대손인 공미가 고려 충렬왕 때 도원수로 왜구를 무찌르고 진양군에 봉해져 진주 형씨의 시조가 되었다.


胡 - 파릉 호씨

시조는 호극기. 중국 건녕 무인 호견의 후손으로 명 나라 때 한림 학사로 있다가 사신으로 우리 나라에 왔다가 귀화하였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그의 고향을 본관으로 삼았다.


洪 - 홍씨

기록에는 59본으로 되어 있으나 남양, 부계, 홍주, 풍산 홍씨를 제외하고는 뚜렷한 기록이 없다.

고구려 영유왕 때 당 나라에서 8학사의 한 사람으로 우리 나라에 와서 귀화한 당홍과 토홍으로 구분된다.

당홍은 신라 선덕여왕 때 태자태사를 지냈고, 토홍은 고려 고종 때 금오위별장을 지냈다.

조선시대 500년을 통해 많은 인물을 배출한 명문 집안이다.


洪 - 남양 홍씨

시조는 홍천하. 고구려 영유왕 때 당나라에서 8학사의 한 사람으로 건너와 유학을 가르치고 문화를 깨우쳤다.

당성백에 봉해졌고 태자태사가 되었다.

고려 개국 공신으로 벼슬을 지낸 홍은열을 중시조 1세로 하고 남양을 본관으로 삼아 지금까지 59대에 이르렀다.

한편으로는 홍선행을 시조로 하여 41대에 이른 계파가 따로 있다.


洪 - 부계 홍씨

시조는 홍좌. 한양에 살다가 부계로 내려가 부계 홍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후손들이 부계를 본관으로 삼아 29대에 이르고 있다.


洪 - 풍산 홍씨

시조는 홍지경. 고려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을 지낸 뒤, 풍산에 살면서 후배들을 가르쳤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풍산을 본관으로 삼아 32대에 이르렀다.


洪 - 홍주 홍씨

시조는 홍규. 고려 태조 왕건이 나라를 세우는데 크게 공헌하고, 홍주부원군이 되었다.

후손들이 홍주 홍씨의 시조로 그를 모시고, 본관을 홍주로 정해 45대에 이르렀다.


后 - 당인 후씨

시조는 알려지지 않고 본관만 당인으로 나와 있다.
본래 중국 성씨로 한 나라 때 후예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우리 나라로 들어와 살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강원도 회양군에 3가구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黃 - 황씨

기록에는 163본으로 되어 있으나 후한 시대 학자였던 황락을 원조로, 그 후손들이 여러 계파로 갈라졌다.

신라 유리왕 때 베트남 지방으로 사신을 가던 길에 풍랑을 만나 평해에 표류하여 자리를 잡고 살았다.

황락의 후손에 갑고, 을고, 병고 3형제가 있었는데, 갑고는 평해군에, 을고는 장수군에, 병고는 창원군에 봉해져 3파로 나뉘었다.


黃 - 성주 황씨

시조는 황세득. 고려 문신 대상공 황석주의 17대손으로 성주에 정착하여 성주 황씨의 시조가 되었다.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하여 장흥부사가 되고 선조 25년인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통제사 이순신 장군을 도와 선봉이 되어 고금도 싸움에서 큰 공을 세웠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이순신 함대의 선봉으로 왜적을 크게 무찌르고 다음 해에 전사하였다.


黃 - 창원 황씨

본관을 같이 하면서도 선조 또는 시조를 달리하여 8파로 나뉘어 있다.

시중공파, 공희공파, 호장공파, 존우공파, 예빈동정공파, 전서공파, 우용공파, 규정공파 등이다.


黃 - 평해 황씨

원조는 황락. 중국 황제의 후예로서 28년 한 나라에서 건너와 평해이 월송사에 도착, 자리를 잡고 갑고, 을고, 병고 세 아들을 두었는데, 이들 중 큰 아들이 평해 황씨의 시조가 되었다.

그 뒤 고려 때 태자검교를 지낸 온인을 1세조로 하여 지금 41대에 이르고 있다.

이 밖에도 덕산 황씨, 상주 황씨, 우주 황씨, 장수 황씨, 제안 황씨, 항주 황씨, 황주 황씨, 회덕 황씨 등이 있다.


皇甫 - 영천 황보씨

원조는 황보경. 그의 후손인 금강성 장군 황보능장이 영원 부원군에 봉해져 영천 황보씨의 시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