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유래 - 彭팽~弼필 작성일 2004-06-08

彭 - 용강 팽씨

시조는 팽적. 원래 중국 금릉 사람으로 1351년 고려 충정왕 때 노국 공주가 공민왕과 결혼하여 들어올 때 내각 학사로 수행하여 용강백에 봉해져 시조가 되었다.


彭 - 절강 팽씨

시조는 팽우덕. 중국 절강 사람으로 1597년에 일어난 정유재란 때 중국 부총병서로 동원장사로 뽑힌 아들 신고와 함께 우리 나라에 와 공을 세우고 귀화하였다.

후손들이 그의 고향인 절강을 본으로 정하였다.


片 - 절강 편씨

시조는 편석용. 명 나라 선종 때 사람으로 1592년 임진왜란 때 장군이 되어 우리 나라에 왔다.

그의 할아버지 편일이 절강백에 봉해졌다 하여 후손들이 절강을 본관으로 삼았다.


平 - 충주 평씨

시조는 평우성. 중국 성씨였으나 언제 우리 나라에 들어왔는지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

충주, 선평, 인천, 예산, 가흥, 평원 등 6본이 있으나 충주를 단본으로 하고 있다.


表 - 신창 표씨

시조는 표대박. 무헌에는 37본으로 되어 있으나 정확한 기록이 없고, 신창 표씨 단본으로 여겨진다.

중국 성씨였으나 장, 방, 위, 변, 윤, 진, 감, 황보 등 8성을 이끌고 황해를 건너 960년 고려에 들어와 귀화하고, 신창백에 봉해져 신창 표씨의 시조가 되었다.


馮 - 임구 풍씨

시조는 풍삼사. 중국 산동성 임구 사람으로 진 나라에서 벼슬을 하다가 위 나라 때 풍서을 다스리며 풍씨 성을 받았다.

명 나라 태학으로 명 나라의 광복을 도모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우리 나라에 왔다. 후손들이 그의 고향인 임구를 본관으로, 그를 시조로 정하였다. 지금 40대에 이르렀다.


皮 - 괴산 피씨

시조는 피득창. 홍천 피씨에서 갈라져 나왔다. 피득창은 조선을 세우는데 공을 쌓고 병조판서 등을 지낸 뒤, 전라감사를 거쳐 괴산에 머물러 살았다.

후손들이 괴산을 본관으로 하고 있다.


皮 - 홍천 피씨

시조는 인선. 주 나라 때 경사인 번중피의 제일 아랫자인 피를 따서 성으로 삼았다고 한다.

고려 충렬왕 때 원 나라에서 금오위상장을 지낸 피위총이 귀화하여 병부시랑을 지냈고, 그의 아들 인선이 정당문학, 좌복사를 지낸 뒤 홍천군에 봉해져 그를 시조로, 홍천을 본관으로 삼았다.


弼 - 필씨

대흥, 전주 2본으로 되어 있으며 대흥 필씨는 무과에 급제한 필몽량을 시조로 하였다. 그의 후손 필성뢰는 정조 때 문과에 급제하고 성균관 사성을 지냈다.

전국에 73가구가 있으나 65가구가 북한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