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유래 - 朴박~夫부 작성일 2004-06-08

朴 - 박씨

박씨는 우리 나라 성씨 가운데 김씨, 이씨 다음으로 많다.

문헌에 보면 314본으로 나타나 있으나, 강릉 박씨를 비롯해서 44본이 전국 곳곳에 흩어져 살며 나머지 270본은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박씨는 모두 신라 박혁거세를 시조로 한 후계 혈손이다.

박혁거세의 탄생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는 신화로 전해진다. 혁거세가 신라를 세우고 첫 임금이 된 이래 그의 아들이 2대 남해왕이 되고, 남해왕의 아들 유리왕이 3대를 지냈으며, 4대왕 석탈해 왕은 유리왕의 둘째 아들이고 5대 파사왕은 그의 아들이다.

이렇게 하여 8대 임금까지가 혁거세의 후손으로 이어졌으며, 54대 경명왕, 55대 경애왕에 이르기까지 10명이 임금을 지냈다.


朴 - 강릉 박씨

혁거세의 24대손인 박순을 중시조로 강릉을 본관으로 삼고 있다.

고려 명종 때 박순이 과거에 급제하여 남경 유수 등 벼슬을 지내고 계림군에 봉해졌으나 관직을 떠나 강릉에 내려가 인재를 양성하였다.


朴 - 고령 박씨

박혁거세의 29대손인 경명왕의 아들 박언성을 중시조로 하였다.

본래 고양과 영천 두 지방을 본관으로 하다가 두 지명을 합쳐 고령으로 본관을 삼았다.

고양 대군의 후손인 섬, 환, 연을 중심으로 한 세파로 다시 갈렸다.


朴 - 고성 박씨

박호를 중시조로, 고성을 본관으로 삼고 지금 33대에 이르렀다.

신라 박혁거세의 29대손 경명왕의 8아들 중 넷째인 죽성대군 언립의 1대손이 박호이다.

고려 고종 때 문하평장사로 있다가 몽고군이 침입하자 구주에서 싸워 큰 공을 세우고 고성백이 되어 중시조가 되었다.


朴 - 광주 박씨

고려 때 전서를 지낸 명훈을 중시조로 광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朴 - 군위 박씨

신라 경명왕의 16대손인 박헌을 중시조로, 군위를 본관으로 삼았다.

박헌은 이 태조를 도와 조선을 세우는데 큰 공을 쌓고 가선대부 공조전서가 되었다.


朴 - 구산 박씨

고려 말기의 정승 박천을 중시조로 구산을 본관으로 정하였다.

박천은 조정에서 공을 쌓고 구산군에 봉해져 구산에서 후손들을 번창시켰다.


朴 - 나주 박씨

시조는 박병묵. 시호는 충무. 고려 때 평장사를 지냈고 나주로 옮긴 뒤 후계의 기록이 끊겼다.

조선 왕조 때 나주 목사가 된 박치생을 중시조로 하여 성씨의 계통을 이었다.


朴 - 밀양 박씨

박씨의 원조인 신라 박혁거세의 29대손인 경명왕은 아들 아홉을 두었는데, 모두가 본관을 정해 중시조가 되었다.

경명왕의 큰아들 언침이 밀양대군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언침을 중시조로 하고 본관을 밀양으로 정하였다.

따라서 밀양 박씨가 경명왕의 아홉 아들이 본관을 정하고 갈라진 박씨 가운데 제일 큰집인 종가가 되어 있다.

그러다가 16대손 현을 중시조로 하여 다시 12개파로 나뉘어졌고 아랫대로 내려오면서 또다시 여러 파로 갈라졌다.

이 밖에도 면천 박씨, 무안 박씨, 문의 박씨, 문주 박씨, 번남 박씨, 비안 박씨, 사천 박씨, 삼척 박씨, 상산 박씨, 상주 박씨, 선산 박씨, 순창 박씨, 순천 박씨, 여주 박씨, 영암 박씨, 영해 박씨, 운봉 박씨, 울산 박씨, 월성 박씨, 경주 박씨, 은풍 박씨, 음성 박씨, 의홍 박씨, 인제 박씨, 전주 박씨, 죽산 박씨, 진원 박씨, 창원 박씨, 춘천 박씨, 충주 박씨, 태안 박씨, 태인 박씨, 평산 박씨, 평주 박씨, 평택 박씨, 함양 박씨 등이 전국 곳곳에서 살고 있다. 다만 박씨의 본은 이렇게 많지만 모두가 박혁거세의 후손이다.


潘 - 거세 반씨

반씨는 중국 주 나라 문왕의 넷째 아들 반계손이 번 땅에 봉해져 아버지로부터 하사받은 성씨로 알려지고 있다.

거제 반씨는 고려 때 사람인 반부가 세조로 되어 있다.

반부는 1265년 사신으로 원나라에 갔는데, 원 나라 임금이 그의 뛰어난 글재주와 훌륭한 장군의 솜씨에 감탄한 나머지 신하로 삼고자 갖은 유혹을 다하였으나 끝내 거절하였다. 원 나라 세조는 이에 감탄하여 반부를 고려로 돌려 보냈다. 고려 충렬왕도 반부의 사람됨을 크게 칭찬하며 거제 부원군으로 임명하였는데, 그 때 관리의 성을 거제 반씨라고 정해주었다.

반부는 일본을 두 차례 다녀왔고, 고려-몽고 연합군을 조직하여 왜구를 토벌하였으며, 김방경을 따라 삼별초를 토벌하는 등 큰 공을 세웠다.

方 - 온양 방씨

염제 신농씨의 13대손인 뢰가 중국 하남 방산 지방에서 살다가 방씨 성을 받았다고 한다.

뢰의 134대손인 지는 당 나라에서 한림학사로서 황제의 명에 따라 669년 신라 문무왕 때 신라로 와 설총과 함께 백성들을 일깨우며 빛을 밝힌 동방 유학의 한 사람이다.

그 뒤 상주로 옮겨 상주를 본관으로 삼다가 운이 온양군에 봉해지면서 본관을 온양으로 옮겼다.

시조 지로부터 운까지는 자세한 기록이 없어 운을 다시 제1대로 정하여 지금 50대손까지 이르렀다. 방씨는 상주, 신창, 군위 방씨가 있으나 모두 온양으로 합본되어 내려오고 있다.

이 밖에도 20본으로 나타나 있는 방(房)씨가 있는데, 이 방씨 중에는 남양 방씨, 수원 방씨가 조금 번창했을 뿐이다.

또 개성 방(龐)씨와 태원방씨가 있으나 모두 중국 사람의 후예로 여겨진다.


裵 - 경주 배씨

배씨의 시조는 신라가 세워지기 전에 6부 촌장의 한 사람인 김산가리촌 촌장 지타라는 사람이다.

다른 5부 촌장과 함께 양산 암라 정방림 사이에서 수양한 박혁거세를 신라 초대 임금으로 추대하고 신라 개국 일등 공신이 되어 총재대사가 된 뒤, 유리왕 9년에 김산사리촌을 한지부로 고치고 배씨라는 성을 임금으로부터 받았다.

그러나 연대가 오래되고 초기의 기록이 분명하지 않아, 그 뒤에 후손인 배현경을 중시조로 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본관은 처음에 조상의 고향인 한지부였는데, 한지부가 경주로 이름이 바뀌면서 본관도 자연히 경주로 바뀌어졌다.

중시조인 배현경은 담력이 좋고, 용맹과 지모가 뛰어나서 장군으로 이름을 떨쳤다.


白 - 수원 백씨

시조는 우경, 시호는 문경인데, 본래 중국 소주 사람 황제 헌원의 후손이다.

780년에 중국에서 우리 나라로 들어와 신라에서 벼슬을 얻어 좌복사공대사도라는 벼슬을 지냈다.

그러나 기록이 이어지지 않아 그 후손으로 경명왕 때 중랑장을 지낸 백창직을 중시조로 삼았다.

그리고 중시조의 증손인 백휘가 고려 때 대나마 대장군으로 수원군이 되자 수원을 본관으로 정하였다.

한편 중시조의 9대손인 백천장이 중국에서 이부상서를 거쳐 우승상으로 수원백이 되어 수원을 본관으로 삼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밖에도 염포 백씨, 부여 백씨, 대흥 백씨가 있으나 모두 수원 백씨에서 갈라져 나간 후손들이다.


范 - 금성 범씨

시조는 승조. 원 나라의 예부시랑으로 노국 공주를 모셨으며, 우리 나라에 와서 귀화하여 금성 범씨의 시조가 되었다.

그의 아버지 유수가 문하시랑 벼슬자리에 있을 때 여진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금성군이 되었다 하여 금성을 본관으로 삼았다.


邊 - 변씨

변씨는 문헌에 67본으로 되어 있으나, 변안열을 시조로 한 원주 변씨와 변경을 시조로 한 장연 변씨, 그리고 변여를 시조로 한 황주 변씨가 중심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서 원주 변씨가 거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邊 - 원주 변씨

시조 변안열은 송 나라 말기 고려로 귀화하여 상장군으로 태천백에 봉해졌다. 그러나 변안열은 황주 변씨 시조인 변여의 후손이다.

자세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조상이 중국 심양으로 들어가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1351년 수장으로 노국 공주를 모신 공로가 인정되어 원주 부원군에 봉해졌다.

원주 땅을 다스리면서 그 곳에 머물러 살았으므로, 후손들이 원주를 본관으로 정하였다.


邊 - 장연 변씨

시조는 백경. 신라 때 아손을 지냈고, 고려 때 문하시중 벼슬을 지냈다고 하나, 자세한 기록은 없다.

그의 증손인 변유녕이 고려 인종 때 연성 부원군을 지냈고, 후손 백영인은 판전의사를 지냈다.


邊 - 황주 변씨

시조는 변여. 중국 옹서 사람으로 송 나라가 망하자 우리 나라로 망명하여 황해도 황주에서 처음으로 정착하여 자리를 잡았다.

고려 고종 때 상장군으로 태천백에 봉해졌는데, 후손들이 그가 살던 황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邊 - 초계 변씨

시조는 변정실. 주 나라 문왕의 제6대손으로 그 뒤에 노라라 변읍에 봉해졌으므로 변씨가 되었다.

그의 후손인 변원이 신라에 들어왔으나, 임금과 뜻이 통할 수 없어 외롭게 지내다가 고려 성종 때 문하시중을 지냈고, 초계군에 봉해져 후손들이 초계를 본관으로 정하였다.

이와는 다르지만 밀양에 살다가 세상을 떠난 고려 때 국자진사를 지낸 변고적이 밀양에서 살았다 하여 밀양 변씨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卜 - 면천 복씨

시조는 복지겸. 태봉의 마군 장군으로 있다가 궁예가 폭군이 되자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떠받들어 고려를 세우는데 1등 공신이 된 대장군이다.

본래는 당 나라 때 학사로 있었으나 난리가 일어나자 신라로 피신하였다가 귀화하였다.

충남 당진군 면천에 정착한 그는 서해안으로 침범하는 해적들을 소탕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奉 - 봉씨

봉씨는 문헌에 19본으로 되어 있으나, 봉우를시조로 한 하음 봉씨, 시조가 알려지지 않고 있는 강화 봉씨와 경주 봉씨가 있을 뿐 그 외의 봉씨는 기록이 별로 없다.


奉 - 강화 봉씨

시조는 정확하지 안흥며 강화 지방의 하음 봉씨가 갈라져 된 것으로 보고 있다.

강화 봉씨 이외에도 광주 봉씨, 안산 봉씨 등 18본이 있는데, 모두 시조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


奉 - 하음 봉씨


시조는 봉우. 고려 인종 때 위위소랑, 정당 문학, 좌복사 등으로 공을 세운 봉우가 하음백에 봉해져 본관이 되었다.

고려 예종 때인 1107년 한 노파가 강화의 하음면 바닷가에 큰 함지가 떠 있는 것을 보고 건져내어 보니 그 속에 범상하지 않은 듯한 아기가 들어 있었다.

그래서 그 아기를 임금에게 바쳤더니 임금이 이상하게 여기며 궁궐에서 길러 봉우라고 이름붙였다.

시조의 묘소는 강화 마니산에 있다.


夫 - 제주 부씨

시조 부을라는 양을라, 고을라와 함께 제주도 한라산 북쪽 기슭의 모홍혈에서 솟아오른 삼신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들은 동쪽으로 떠내려오는 상자를 건져 세 미녀와 오곡의 씨앗과 망아지, 송아지를 얻었다.

상자에서 나온 세 미녀와 결혼하여 제주 일도, 이도, 삼도의 세 곳으로 나뉘어 살았다.

그로부터 부씨의 시초가 이루어졌으나, 기록이 한동안 없어 대를 이어 나가지 못하다가 부득시를 중시조로 하고, 본관을 제주로 하여 부씨 가문을 이어오고 있다.

이 밖에도 용서 비(丕)씨, 빈(彬)씨, 빈(賓)씨, 빙(氷)씨 등이 있으나 중국인을 시조로 우리 나라에 귀화한 사람들을 중시조로 여기지만 분명한 기록은 나타나 있지 않다.

방씨는 경주를 본관으로 빙여경을 시조로 한 기록이 있으나 그 기록도 분명하지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