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유래 - 馬마~閔민 작성일 2004-06-08

馬 - 목천 마씨

시조 마려는 온조왕의 보좌관으로서 온조왕을 따라 고구려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위례성에 도착해 백제를 세웠다.

그의 형 마신은 고구려에 남아서 동명왕을 보필하였으니 형제가 모두 임금을 모신 사람들이다.

그러나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여러 대에 걸쳐 계통을 밝혀놓은 기록이 없어 중단되었다가,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게 망한 뒤에 마육황을 중시조로 다시 계통을 찾았다.

그 뒤 고려 정종 때 8대손인 순흥이 벼슬하여 목천군에 봉해지면서 목천을 본관으로 삼았다.

순홍의 아들 점중에게 현과 혁 두 아들이 있었는데 현은 목천 마씨의 1세가 되고 혁은 장흥 마씨의 1세가 되어 본이 둘로 갈라졌다.


麻 - 영평 마씨

영평 마씨와 열산 마씨의 2본이 전해지고 있으나 두 본 다 정확한 기록은 없다.

고려를 세울 때 공을 세운 개국 공신 마난이 영광을 본으로 삼고 시조가 되었다.

열산 마씨는 조선 선조 때 정유재란이 일어나 명 나라 제독으로 우리 나라에 왔던 마관 장군의 증손자 마순상이 귀화하여 열산을 본으로 삼고 시조가 되었다.


萬 - 강화 만씨

신라 진평왕 때 대나마 벼슬을 지낸 만세, 경덕왕 때 상대등 벼슬에 오른 만종, 고려 태조 때 노예 해방을 외쳤던 만적 등의 이름이 있으나 분명한 기록은 없다.

다만 중국 명 나라의 만세덕의 후예로 알려져 있다.


梅 - 충주 매씨

중국 산동성으로부터 와서 매씨로 성을 얻은 사람이 충주에 살면서 충주를 본관으로 하고 매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조선 중종 때 아버지 병환에 지극한 효성을 보여 나중에 정문이 세워진 매한손이 있다.


孟 - 신창 맹씨

신창 맹씨는 중국의 대학자 맹자의 후손이다.

언제 우리 나라에 들어왔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맹자의 50대손인 맹우현이 고려 원종 때 국자감을 지냈고, 그의 셋째 아들 맹리가 시중을 지냈으며 신창백에 봉해져 신창을 본관으로 삼고 시조가 되었다.

맹리의 제사는 해마다 10월 1일 신창에서 지낸다.


明 - 서촉 명씨

시조 옥진은 중국 원 나라 말기 촉 땅에 살다가 1363년 대하국을 세우고 황제가 되었다가 세상을 떠나고 아들이 왕위를 이어받았다.

그러나 새롭게 세워진 명 나라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1372년 고려로 건너와 귀화하여 왕을 돕다가 조선이 세워진 뒤 화촉군에 봉해졌다.

본관은 그의 고향으로 삼았다.


牟 - 함평 모씨

시조 모경은 중국 송 나라 흠종 때 어부상서를 지내고 대사마 대장군이 되었다.

고려 17대 인종 4년 이자겸의 난이 일어나자 사신으로 고려에 와서 난을 가라앉히고 일등 공신이 되었으나 귀국 길이 막혀 고려에 머물다가 평장사 벼슬을 맡아 함평군에 봉하여졌다.

그의 후손들이 함평을 본관으로 삼아 계통을 이어간다.


睦 - 사천 목씨

시조 목효기는 고려 시대 때 광장동정 벼슬을 지냈으며, 그 조상 때부터 사천 땅에서 살고 있었다.

목효기는 형제간의 우애가 얼마나 다정하였던지 성을 화목하다는 뜻의 목씨라고 정하고 사천을 본관으로 삼았다.

그로부터 33대까지 내려오면서 항렬로는 희, 재, 호, 용, 태, 순, 병, 식으로 정해 계통을 이어간다.


文 씨

문씨는 문헌에 131본으로 되어 있으나 남평 문씨, 감천 문씨, 정선 문씨가 크게 번창하였을 뿐 다른 문씨는 번성하지 못하였다.


文 - 감천 문씨

본래 경주 김씨였으나 중국에 들어가 문장으로 이름을 떨치고 왕으로부터 문씨 성을 하사받아 문씨가 되었다.

그러나 문씨의 시조는 문원길로 되어 있다.

중국에 들어가 이름을 떨쳤다는 사람은 문원길보다 훨씬 앞 시대의 사람으로 여겨진다.


文 - 남평 문씨

신라 20대 자비왕 때의 사람인 문다성이 시조로 되어 있다.

문다성은 재미있는 출생 전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신라 자비왕 15년인 472년 2월 남평현 동쪽에서 자색의 광채가 빛나자 왕이 신하를 시켜 가보게 하였더니 큰 바위 위에 커다란 돌 상자가 있었다. 이상히 여긴 신하가 돌 상자의 뚜껑을 열어보니 그 안에 아기가 있었다. 그리고 '文'이라는 글자가 씌어진 쪽지가 있었다. 그래서 문씨로 성을 붙여주었다.

다성은 그 뒤 지증왕 때 중시아랑 벼슬을 하고 진흥왕 때 대국사를, 진지왕 때 대아랑 대국사가 되는 등 세 임금 밑에서 벼슬을 하고 남평백이 되었다.


文 - 정선 문씨

정선 문씨의 시조는 문임간으로 본래 전씨였으나 중국에 들어가 문장으로 이름을 날리고 임금으로부터 문씨 성을 받았다.


閔 - 여흥 민씨

민씨는 본래 공자의 제자 중 유명한 10철 가운데 한 사람인 민자건의 후예이다.

자건의 후손이 고려 때 사신으로 우리 나라에 왔다가 여흥에 정착하여 여흥을 본관으로 삼고 민씨 시조가 되었다.

민씨는 단 하나의 본관을 가진 성씨로, 고려 충숙왕 때에 대제학을 지낸 민적을 시조로 하는 문순공파와 수정승을 지낸 학자 민지를 시조로 하는 문인공파의 두 파로 나뉘어져 있다.

민씨는 우리 역사상 세 차례 크게 나타났으니 첫 번째는 고려말에서 조선 초기이고, 두 번째는 조선 숙종에서 영조에 이르는 100년간이며, 세 번째는 조선 말기 고종 때이다.

이 밖에도 광녕 묵(墨)씨와 요동 묵씨, 광주, 공산, 서산, 김해 모(毛)씨, 인천, 송림, 일동 문(門)씨, 재령 미(米)씨 등이 있으나 그 시조나 후예들의 기록이 분명하지 않다.